 | 중국 唐나라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하다가 나라를 망친 황제로 유명하다. 그러나 즉위 초에는 현인(賢人)을 등용하고 문예를 장려하여 '개원(開元)의 치(治)'라 불릴 만큼 문물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여기에는 현상(賢相) 요숭(姚崇)의 공로가 컸다. 그런데 요숭이 병으로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노회신(盧懷愼)이 국정을 살폈으나 역부족이었다. 노회신은 청렴 결백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으나 요숭의 직무를 10여일간 대행할 때 요숭처럼 신속히 처리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는 매사를 요숭에게 상의한 다음에야 처리하곤 했는데, 사람들은 노회신을 가리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伴食宰相]'이라고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