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방

벌거벗은 여자 <여자 몸에 대한 연구>

가문의영광 2014. 3. 2. 17:56

 

여자 몸에 대한 동물인류학적 탐험의 최종 보고서


국내에 《털 없는 원숭이》로 이름을 널리 알린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인류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새 책 《벌거벗은 여자(원제: The Naked Woman)》가 출간되었다. 한국에 소개되는 일곱 번째 저서인 《벌거벗은 여자》는 2004년 9월 영국과 동시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 책은 종래 《털 없는 원숭이》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그보다 여자의 몸에 초점을 맞추었고 훨씬 더 깊이 파고든 저작이다. 그래서 저자 스스로 《털 없는 원숭이》에서부터 시작된 여자 몸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을 통해 이제 종착역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벌거벗은 여자》는 여자의 몸에 관한 동물학적·인류학적 탐험의 최종 보고서라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여자 몸을 22개 신체 부위로 나누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차례로 탐험해가는 구성도 흥미롭다. 그동안 펴낸 저서들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폭넓은 관점을 제공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여자 몸의 복잡한 원리와 신비, 그리고 진화 과정의 숨겨진 비밀을 모두 파헤친다. 그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영장류에서 인간 종으로, 그리고 다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기까지, 여자 몸을 둘러싸고 일어난 수천만 년에 걸친 변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단지 동물행동학적 측면에서만 여자의 몸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연과학을 넘어 인문학으로까지 시야를 넓히며 여자의 몸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마련해준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 현대 사회, 그리고 문명 사회에서 비문명 사회의 부족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집단을 아우르며 여자의 몸을 둘러싼 경이로운 사실들을 밝혀낸다. 적어도 여자의 몸에 관한 한, 이만큼 방대한 자료와 오랜 연구 경험이 축적된 책은 당분간 만나기 힘들 것이다.

왜곡과 편견을 넘어 여자의 몸을 바로 알게 해주는 책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여자의 몸은 가장 정교하고 미묘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데스몬드 모리스가 여자의 몸에 천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자야말로 지구상 모든 생물체 가운데 가장 진화한 존재이자 가장 아름다운 유기체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다른 어떤 종의 수컷과 암컷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렇다면 같은 인간 종으로서, 여자는 왜 남자보다 더 진화한 몸을 갖게 되었을까? 데스몬드 모리스는 진화의 과정에서 정교하게 ‘디자인된’ 여자 몸의 놀라운 메커니즘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여자의 몸은 대개 가슴이나 성기, 엉덩이, 다리 등 관능적 신호를 전달하는 신체 부위들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책은 이들 부위를 포함, 그동안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는 다른 부위, 이를테면 눈, 코, 입, 귀, 어깨, 등, 발에 이르기까지 여자 몸의 전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여자의 몸을 머리에서 발까지 개별 장으로 나누고, 모든 여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 특징을 제시한 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이러한 특징들을 어떤 식으로 강조하고 억압했는지 설명한다.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속에서 여자의 몸은 풍만한 가슴과 매끄럽게 쭉 뻗은 다리, 날씬한 허리, 적당히 탄력 있는 엉덩이로 그 이미지가 굳어져왔다. 여자 몸에 대한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는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여자의 신체를 인위적으로 축소하고 과장하는 등 억압을 가해왔다. 더 극단적으로는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기 할례의 관습까지 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도 매년 200만 명에 달하는 어린 소녀들이 야만적인 관습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저자는 여자의 몸이 겪어온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설명하며,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혹은 남자의 소유물로 취급해온 남성 중심의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인류의 진화를 연구해온 저자가 볼 때,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이런 남성 지배적 경향은 수백만 년에 걸쳐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한 방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동물의 한 종으로서 인류가 눈부신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노동의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는 데 있다.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모든 걸 맡기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온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어느 쪽이 우월한 존재가 되어 다른 쪽을 지배한다는 발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부터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신체적으로 억압받는 여자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이 책이 여자의 몸을 둘러싸고 빚어진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고, 남자와 여자가 조화롭고 평등한 관계로 ‘진화’하는 데 귀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한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지적 탐험


데스몬드 모리스가 내는 책은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곤 한다. 동물행동학 혹은 문화인류학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비전문가 독자들 앞에 풀어내는 능력은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그래서 막상 책을 접하면 “단 한 줄도 지루하지 않게 쓴 책”이라는 평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한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 탐색하고 연구한 결과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자의 몸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제대로 알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남녀 독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저자는 영국 태생이지만 이 책에서 전 세계 모든 인종, 모든 민족의 여자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그 속에 한국 여성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반영해, 이 책에는 한국어판을 위한 별도의 저자 서문이 실려 있다. 그 외 70여 컷의 컬러 사진과 상세한 사진 설명을 곁들여 다양한 문화권 여자들의 특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여자의 몸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서로서,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책 읽는 재미와 함께 풍부한 교양과 지식을 안겨줄 대중 교양서가 될 것이다.

 

책머리에
1장 진화
2장 여자의 머리카락
3장 여자의 이마
4장 여자의 귀
5장 여자의 눈
6장 여자의 코
7장 여자의 뺨
8장 여자의 입술
9장 여자의 입
10장 여자의 목
11장 여자의 어깨
12장 여자의 팔
13장 여자의 손
14장 여자의 가슴
15장 여자의 허리
16장 여자의 골반
17장 여자의 배
18장 여자의 등
19장 여자의 음모
20장 여자의 성기
21장 여자의 엉덩이
22장 여자의 다리
23장 여자의 발
 
데스몬드 모리스 Desmond Morris


1928년 영국 윌트셔에서 태어났다. 버밍엄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공부한 뒤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 런던 동물원의 포유류 담당 책임자로 8년 동안 일했다. 1967년 《털 없는 원숭이(The Naked Ape)》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50편 가까운 논문과 7권의 저서를 발표한 바 있다. 《털 없는 원숭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천만 부 이상 팔렸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주제로 하는 TV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영화도 많이 만들었다. 그의 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모든 연령, 그리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두루 인기가 높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동물학과 인류학을 연구하는 그 어떤 사람보다 유명하고, 또 재능이 넘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인간 동물원(The Human Zoo)》, 《맨워칭(Manwatching)》, 《보디워칭(Bodywatching)》, 《육안으로 바라본 털 없는 원숭이(The Naked Eye)》, 《피플워칭(Peoplewatching)》 등이 있다.

 

 

 

서지원
연세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2003년 동계올림픽 IOC위원회 수행 통역을 맡았고, KBS 9시 뉴스 번역을 담당했다. 현재는 (주)엔터스코리아의 전속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꿈을 포기하지 마라》 등 다수가 있다.

이경식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나에게 오라>(각색), 연극 <춤추는 시간여행> <동팔이의 꿈>, MBC 특집 드라마 <선감도> 등에서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외화 번역가로도 활동했고, 옮긴 책으로 《러시아 문화사》가 있다.


 

 

 

여자의, 남자에 의한 조작,진화…탐험하기


선정적인 제목에 유혹 당한 독자라면 몇장을 들추지 않아 배반을 직감할 것이다. 돈벌이를 겨냥한 일체의 불온한 담합은 이 책에 없다. 여자의 몸에 대한 탐구서이면서도 성적 판타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경계라면 경계다. 저서 ‘털없는 원숭이’로 국내에 상륙한 적이 있는 데스몬드 모리스는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인류학자다. 남성으로서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이다. 그는 ‘벌거벗은 여자’(원제 The naked women)에서 여자의 몸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22개 단위로 해체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머리카락, 눈, 코, 가슴, 음모, 성기, 엉덩이… 등은 그대로 이 책의 각 단락 제목이다. 여체의 각 부위에 깃든 기막힌 정교함을 그는 치밀한 글로써 증언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진화에 애당초 평준화 같은 것은 없다. 여자야말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 중에서 가장 진화한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생물학적 특징만을 들췄다면 책의 재미는 덜 했을 것이다. 저자는 남자가 여체의 절묘한 기능을 지역과 시대에 따라 어떻게 확대하고 축소·왜곡했는지를 드러냄으로써 자연과학을 넘어 인문학으로까지 시야를 넓히고 있다. 이는 곧 남자가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혹은 자기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과정에 대한 인류학적 설명이기도 하다.
“여자는 다른 영장류 암컷의 많은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특이하고도 독특한 특징을 갖추고 있다.”
가령 여자의 가슴이 항상 둥근 모양인 것은 수백만년의 진화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가슴의 지방조직은 모유를 데워주고 모유를 생산하는 샘의 쿠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수유를 하지 않는 기간에도 가슴이 반구 모양인 이유를 설명하진 못하며, 따라서 성적 신호와 연관이 있다”고 저자는 수정한다. 일반의 통념과 달리 가슴이 작은 여자들이 큰 여자들보다 아기에게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젖을 물릴 수 있다는 부분은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다른 예로, 여타 종의 암컷과 달리 여자의 음모는 왜 그렇게 생겨 먹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여체의 음모가 몸에서 분비되는 관능적인 페로몬 향을 더 오래 지속하도록 냄새를 가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남자에 비해 여자의 허리가 잘록한 것도, 골반이 넓은 것도 남자에게 원시적 매력을 풍기기 위한 진화의 소산이다. 그러나 인류가 문명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여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치장하게 된다. 이런 문화적 장식 가운데 어떤 것들은 여자들이 향유하고 즐거워했겠지만 또 어떤 것들은 오히려 고통을 안겼다. 꽉 죄는 코르셋은 서양의 남자가 여자들의 순종을 강요하는 고문의 도구였다. 너무 죄었을 때 생기는 두통, 간 손상, 유산, 혈액 순환 장애는 근대에 와서야 공공연히 거론될 수 있었다. 여자들을 옥죄던 코르셋이 사라지도록 부추긴 것은 남자의 ‘자비’가 아니라 어이없게도 ‘전쟁’이었다.
“1차 세계 대전 와중에 미국군수산업연합회는 코르셋 지지대를 만드는 데 엄청난 양의 금속이 낭비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곧 여자들의 코르셋 착용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이로써 코르셋에서 브래지어로의 변화가 한층 가속화했다.”
여성들의 입술 화장을 금지하는 법률은 18세기 영국에서 실재했다. “남자들이 화장한 여자의 입술을 보고 잘못된 결혼의 유혹에 발목 잡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여자의 몸은 이처럼 남자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굴절되고 심지어 진화의 순리를 거스르기까지 했다. 결국 남성 지배적인 문화는 수백만년에 걸쳐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한 방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자의 조작일 뿐이다.
경향신문  조장래 기자  2004.09.18


여성의 봉곳한 가슴은 엉덩이 본뜬 유혹도구

 ‘털 없는 원숭이’이후 37년 간 연구 및 저술 활동이 집적되면서 영국의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76)의 관심은 ‘인간’에서 ‘여자’로 서서히 옮아갔다. 1985년 나온 ‘보디 워칭’의 개정판을 준비하다가 아예 여자의 몸에 초점을 맞춰 써버린 ‘벌거벗은 여자’를 저자는 “이번 책은 여자의 몸에 대한 생각의 종착역”이라고 설명한다. 영국과 한국에서 동시 출간한 이 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의 몸을 22개 부위로 나눠 샅샅이 탐구하는, 동물사회학적 보고서다. 저자는 여성의 신체가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더 정교하게 진화했다고 전제한다. 남자는 사냥, 여자는 종족보존으로 노동역할이 분담되면서 남성의 몸은 근육만을 키워온 반면, 여성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지방이 많은 풍만한 몸으로 디자인됐다. 봉긋한 가슴과 도톰한 입술, 풍만한 엉덩이로 때로는 성적으로, 때로는 보호본능을 자극해 남성을 족쇄를 채우는 여성의 몸이‘아이 같은 어른’이라는 진화목표에 더 충실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여성은 몸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헤어스타일을 다듬고 입술을 붉게 칠하는 등 화장을 하고 몸매를 가꾸는 수준의 치장부터 수술을 통해 가슴을 키우기까지, 신체의 일부를 강조하거나 억누르고 혹은 확대하거나 축소해왔다. 이렇게까지 여성이 몸을 괴롭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자의 분석에서는 ‘관능적 요인’이 두드러진다. 입술에 색을 칠하는 것은 여성이 몸을 치장해온 대표적 방법이다. 저자는 붉고 두툼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입술 메이크업을 성적 제스처로 해석한다. 입술은 생김새나 질감, 색조 면에서 여성의 성기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마호메트의 가르침과 상관없이 이슬람문화권에서 여성들이 입술을 가리는 규범도 저자의 분석에 힘을 보태준다. 여성의 가슴이 양육이라는 기능에 반해 반구 모양으로 솟아오른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개 영장류 암컷들이 엉덩이를 이용한 뒷모습으로 수컷을 자극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여성도 의지와 상관없이 엉덩이가 관능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신체구조를 지녔다. 그러나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앞모습으로 마주할 때가 많기 때문에, 여성은 엉덩이를 모방한 가슴이 유혹의 도구로 기능할수 있도록 진화하게 됐다. 대신 엉덩이는 커야만 유리한 것은 아니어서, 보다 날렵한 형태로 자리잡게 됐다. 최근 유행하는 배꼽티 패션도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바지를 즐겨 입기 시작하면서 치마를 입을 때 노출되던 다리의 맨살이 가려지게 되자 이에 대한 보상으로 배를 노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전족전통에서 보듯 여성의 작은 발을 선호한 것은 섹시해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페디큐어 등 발톱을 장식하거나 비싼 구두에 집착하는 여성의 심리는 과시욕으로 풀이된다. 


女體 그 오묘한 신비를 찾아서…


겨드랑이에 털이 수북한 여성을 보면 반사적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이유는 뭘까. 왜 남성은 겨드랑이 털을 깎는 경우가 드문데도 여성의 겨드랑이 털만 시각적 혐오감의 대상이 되는가. 실제 미국 유명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최근 한 시사회에 참석해 팬들에게 손을 흔들다 겨드랑이 털이 그대로 노출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었다. 사실 겨드랑이 털은 섹스 측면에서 유용한 것이다. 겨드랑이는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 성분을 분비하는 아포크린 샘이 발달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난 털은 페로몬을 잡아둠으로써 성적인 신호를 보내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더구나 여성은 남성보다 아포크린 샘이 더 발달해 있어 한층 강력한 페로몬 향을 발산해낸다. 남성이 단순히 시각적 충동 때문에 여성의 나체에 흥분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다수 여성이 이성을 유혹하는 데 유리한 겨드랑이 털을 깎는 이유는 무엇일까.
‘벌거벗은 여자’는 ‘털없는 원숭이’ ‘접촉’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최신작이다. 한국에서의 인기를 감안, 본국인 영국과 동시에 출간됐다. 지은이가 밝힌 대로 ‘털없는 원숭이’에서 시작된 여자 몸에 대한 연구를 종착역에 다다르게 한 책이다.
모리스는 여성의 머리카락, 입, 가슴, 성기 등 22가지 신체 부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여성은 해부학적으로 남성보다 훨씬 진화한 존재임을 밝힌다. 남성은 종족으로서는 사냥하다 몇 명쯤 죽어도 별 상관없는 ‘소모품’에 불과했으나, 여성은 종족의 양육과 번식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훨씬 소중한 존재였다. 자연은 이처럼 가치 있는 존재였던 여성에게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고 질병에도 잘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어디가 어떻게 우월하다는 것일까. 우선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민감한 후각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들은 눈을 가린 상태에서도 냄새만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거의 100%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아버지들이 보이는 적중률은 50% 남짓에 불과하다. 또 여성은 부드러운 관절에 힘입어 더욱 섬세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건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이다. 원시시대 여성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부족사회의 삶을 조직하는 존재였다. 말싸움으로 남자가 여자를 이기기 힘든 것이나 통·번역사 중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여성의 몸은 지방이 많고 고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등 ‘유아적’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는 남성 위에 군림하고 부려먹기 위한 선택적 진화의 결과다. 남성은 사냥을 위해 육체적으로 강인하게 진화했지만, 부성(父性)적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체 앞에 굴복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입술은 여체가 지닌 유아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실례다.
불룩하게 돌출한 여성의 입술은 침팬지의 초기 태아와도 비슷한 모양을 가진다. 입술은 특유의 성적 이미지로 인해 금욕을 강요하는 문화권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입술화장을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됐는데, 남자들이 화장한 여자의 입술을 보고 잘못된 결혼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성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에게 호감을 얻고자 하는 남성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다. 더구나 상대는 적이 아니다. 음모, 성기, 엉덩이 다 나오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성성의 우수함을 인정하고 (여성에게) 사랑받자”로 요약할 수 있다. 지은이의 관점에 동의한다면 여생이 편할 듯하다. 앞쪽에 실린 76컷의 컬러화보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이제 서두의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지은이는 두 가지 해답을 제시한다. 하나는 현대의 의복생활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우리의 몸은 몇 겹의 옷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땀투성이 피부는 금세 악취를 풍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겨드랑이 털을 깎고 방취제를 뿌린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대 인류가 이성에게 성적 신호를 보내는 신체 시스템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모든 이성에게 구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겨드랑이 제모(除毛)가 유독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명백한 여성차별이 아닐까? 모리스는 이 부분을 피해간다. 일관되게 여성에 대한 찬양과 숭배의 뜻을 밝히고 있는 지은이로서는 ‘옥에 티’를 남긴 셈이다. 


수컷들의 시선 끌기…광적인 아름다움 추구

여성을 관음과 향유의 대상으로 보는 데 길들여진 남성의 시선.
'아름다움'이라는 지팡이에 의지해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
문신。성형수술 등 신체 왜곡의 현실을 인류
KAL기 폭파 사건이 발생했던 1987년 나는 어떤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폭파 사건이 있은 며칠 후 오전 수사 결과가 공식 발표된다고 해서 동료들과 함께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폭파범 여성이 등장했을 때, 그녀의 고개 숙인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되었을 때, 함께 있던 동료들의 입에서 각종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그녀가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때 텔레비전 앞에 서 있던 동료 중 90%는 남성이었고, “예쁘다”는 유의 말은 수사 결과가 발표되는 내내 들려왔고, 그들을 사로잡은 가장 중요한 ‘사실’인 듯 보였다.
나는 속으로, 혼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예쁘다는 사실 앞에서 그녀가 저지른 범죄, 그 배후에 있는 어떤 집단의 무모함, 그녀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또 다른 집단의 저의 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런 인상은 그 후로도 그녀가 국민들의 동정표를 얻으며 수사 기관에 의해 관대하게 다뤄지는 점,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책을 내고 비공식적으로 면죄부를 받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여전히 혼돈스러웠다. 비행기 폭파범이 늙고 못생긴 여자거나, 힘있는 남성이었어도 일이 그렇게 진행되었을까. 그것은 같은 성적 소수자의 처지인데도 하리수의 연예 활동은 활발하게 이뤄지는 반면 홍석천은 그렇지 못한 것에서 느끼는 의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의문을 풀려면 우리가 남성중심의 문화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스몬드 모리스가 이번에 새로 낸 책 『벌거벗은 여자』는 그런 혼돈스러움에 대한 기초적인 답을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을 성적 동물이라는 코드로 읽은 『털없는 원숭이』의 시각과, 인간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탐구한 『바디 워칭』의 방법을 여성의 몸에 국한시켜 집중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감히 여성의 몸에 대한 동서양의 생물학적·진화심리학적·인류학적 정보의 집대성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자료적 측면에서 다양하고 풍성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주제로 책을 쓴다 해도 이것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한 분야의 학문적 세계를 고수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심화, 확장시켜온 저자의 노력에 존경의 마음도 품게 된다.
그런데 왜 『벌거벗은 여자』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을까. 우선 제목부터 그렇다. 『맨 워칭』과 짝을 이루는 책이면 왜 ‘우먼 워칭’이 아니고 ‘벌거벗은 여자’인가 말이다. 그 제목에는 여성을 관음과 향유의 대상으로 보는 데 길들여진 남성의 시선이 들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자의식은 책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예민하게 발동된다. 여성의 몸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는 커다란 엉덩이, 건강하게 상기된 피부, 풍만한 가슴이 미덕이라는 기본적인 진술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남성은 여성의 몸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대상으로 여겨 왔으며,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성의 몸을 억압해왔다는 내용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여성의 생물적 자연스러움을 왜곡하고 통제했다. 허리를 가늘게 하는 코르셋, 발을 작게 하는 전족 풍습, 귓불이 어깨까지 늘어지도록 하는 귀고리, 목을 길게 빼도록 하는 청동고리, 아랫입술에 매단 접시 만한 장식 등. 더구나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시행되고 있는 소녀들에 대한 성기 절제 풍습을 접할 때면 고통스럽다. 이 책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이면서 동시에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과 왜곡의 인류학적 고찰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이르러 여성의 몸은 자유로워졌는가? 여성의 몸에 대한 전근대적인 억압과 왜곡이 사라졌는가? 그 질문에 대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발트라우트 포슈의 『몸 숭배와 광기』라는 책이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게 진행되어온 여성의 아름다움 추구가 현대에 이르러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여성은 이제 미적 이데올로기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자발적인 추구자가 되어 있다고 한다. 여성이 완벽한 몸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구명대와 같아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고 모순적인 시기에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지팡이에 의지하면 여성의 삶과 역할이 한층 명료해지기 때문이다. 문신·성형수술·피어싱 등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식이 생물적 자연스러움을 비틀고 재구성하는 방식인 것도 예전과 다름없다. 아니, 예전보다 더 심한 광기의 행태를 보인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은 거의 파괴의 수준이다. 많은 성형 수술의 실상은 마치 자발적인 고문처럼 보인다. 성형 기술이 발달할수록 여성들이 받아들이는 폭력의 수위는 높아진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기 위한 의무적인 단계로서 여성들의 자신들의 몸에 불만을 품는다.”
여성의 몸이 성적 매혹, 관능적 아름다움을 갖기 위해 광기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면 남성의 몸은 물리적인 힘을 추구하며 폭력성을 갖추도록 진화해왔다(리처드 랭햄의 『악마 같은 남성』). 남성이 그토록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의도는 여성이 사유 재산의 일종이라는 단순한 경제 논리에 있지만은 않다. 남성의 성적 나약함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여성을 무력화해야만 힘의 사용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기시다 슈의 『성은 환상이다』). 무엇보다도 남성의 육체는 여성에 비해 구조적으로 불완전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취약한 존재라는 것이다(엘리자베트 바뎅테의 『XY·남성의 본질에 대하여』). 그러니 힘을 숭배하는 남성들의 욕망에는 더 많은 여성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뿐 아니라 자신들의 나약함을 인식하는 자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남성이 폭력적으로 진화해온 원인의 반이 여성의 책임이듯이,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광기의 원인도 절반은 남성의 몫이다. 남성은 여전히 여성의 아름다움에 매혹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고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폭력성 앞에 잠재된 공포증을 느낀다.
아마도 현대 문명은 폭력성과 관능성이라는 두 줄기의 철로 위를 달리고 있는 듯 보인다. 뒤늦게 음모설이 등장하고 있는 KAL기 폭파 사건에서도 또 하나의 사회심리학적 음모를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폭파범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 늙고 힘없는 노인의 조합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이 사회의 지배 세력인 남성 집단을 가장 덜 자극하는 존재들이며, 그리하여 가장 빠르게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 원고를 시작하면서부터 끝낼 때까지, 이런 책을 소개하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자의식이 있다. 이를테면,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남자』를 보면서 여성들은 그야말로 남자를 새롭게 발견한 듯 감탄하고 신기해했던 데 비해 대부분의 남성들이 “다 아는 얘길 가지고…”라고 심드렁해했던 것처럼 『벌거벗은 여자』에 대해서도 그런 것 같다. 많은 여성들은 불편한 심기를 다스리며 “다 아는 얘길 가지고 새삼스럽게…”라고 생각할 확률이 크다. 그렇지만 남성들은 틀림없이 “굉장한 책이다!”라고 열광할 것 같다.
오히려 내게 더 관심이 있는 대목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그 양측 사이의 간극이다. ‘몸’은 21세기 인문학의 중심 화두가 될 것이라 한다. 인간의 몸을 생물학적·미학적·의학적으로 읽는 데서 벗어나 몸의 정치성·경제성·문화성을 읽어내는 다양한 분야의 논의가 심화 확장되고 있다. 그런 논의가 남녀 사이의 틈을 좁히는 기능을 할 수 있을까, 또 혼자 생각해본다.


여체엔 ‘인류의 역사’가 담겨있다


‘털 없는 원숭이’로 국내에 잘 알려진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인류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새 책으로 영국과 동시에 출간되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은 ‘털 없는 원숭이’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여자의 몸에 대해 더욱 집중했고, 훨씬 더 깊이 파고들었다고 얘기한다. 머리카락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여자의 몸을 스물 두군데 신체 부위로 나누어 분석해 들어간다. 역자인 서지원(전문번역가)씨는 “책을 번역하면서 ‘여자인 내가 나의 몸에 대해 이토록 무지했던가’라는 자책과 반성을 했다”면서 “여자의 몸이 남성에 의해 유린당해온 착취의 역사를 목격하면서 한 여자로서 가슴이 메었다”고 했다. 이 책의 내용과 저자의 태도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여자는 신체적으로 많은 점에서 남자보다 한 걸음 더 진화했으며 훨씬 더 현실에 적응도가 높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종족의 보존을 담당한 여자는 신체적 특징에서 성(性)과 출산이란 측면때문에 특수하게 진화했고, 이로인해 여자의 몸은 가장 멋지고 놀랍도록 정교하게 진화한 유기체라는 것이다.
남자들의 성적 팬터지는 풍만한 가슴과 쭉 뻗은 다리, 날씬한 허리, 탄력 있는 엉덩이의 여자를 요구했고 이는 여자의 신체에 대한 인위적인 축소와 과장 등 억압으로 구체화됐다. 저자는 여자의 몸이 가진 여러가지 특징을 통해 생존과 투쟁, 계약과 배신, 사랑과 희생등 사회와 인간을 얘기한다. 여자의 몸에 거대한 인류의 역사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의 가슴에 대해 보자. 여자의 가슴은 양육과 성의 두가지 생물학적 기능을 한다. 그런데 영장류의 암컷은 수유를 하지 않을 때는 가슴 모양이 평평하다. 유일하게 인간 여자만이 양육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가슴 모양이 볼록하다. 이는 성적 신호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성적신호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엉덩이 부근이다. 인간 이외의 영장류 암컷은 네 다리로 걷기 때문에 엉덩이를 이용해 뒷모습으로 성적 신호를 보내지만 두 다리로 걷는 인간 여자는 뒷모습에서 성적 신호를 보낼 수가 없다. 이로인해 엉덩이를 모방해 가슴이 두 개의 반구모양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굳이 엉덩이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가슴을 통해 섹스어필이 가능해지도록 진화한 것이다.
성적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여자의 가슴은 억압의 대상이었다. 청교도 사회에서 젊은 여자는 가슴을 꽉 죄어 어린 소녀와 같은 몸매를 갖게 하는 속옷을 입어야 했다. 심지어 17세기 스페인에서는 여자의 가슴이 자라나지 않게 납으로 만든 판으로 가슴을 누르도록 했다.
여자의 가슴은 현대에 들어서도 수난의 대상이 됐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선 그동안 100만명이 넘는 여자들이 가슴에 실리콘 주입 시술을 받았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가슴 모양이 다시 선호되면서 2001년에만 4000명이 넘는 미국 여성들이 실리콘을 제거하는 수술을 다시 받았다.
잘록한 허리가 남성에게 어필하는 것도 아주 간단한 생물학적 이유가 있다. 여자는 초산을 경험하면 어느 정도 허리가 굵어지게 된다. 따라서 가는 허리는 성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었으나 아직 실제 경험은 없는, 혼기가 찬 처녀임을 상징했다. 이러한 열망 때문에 수백년에 걸쳐 여자들은 단단한 벨트, 타이트한 붕대, 악명 높은 코르셋에 이르기까지 허리를 혹사시키는 과정을 겪게 된다.
저자는 여자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신체의 부위에 대해 각각의 존재 의미를 분석하고 남자의 몸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들을 나열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친 진화의 아름다운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성 몸이 지닌 진화의 비밀

인간과 원숭이를 비교한 책 ‘털없는 원숭이’ 등으로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는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모리스가 이번에는 인간 여성의 몸에 시선을 집중했다.
모리스는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물체보다도 뚜렷한 진화와 적응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자의 몸”이라며 “몸의 특정 부분에 관해 모든 여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고, 또 이 특성들을 어떻게 가꾸거나 숨겼는지 살펴봤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저자는 “근육질 남자의 몸은 지방질이 12.5%밖에 되지 않지만, 풍만한 여자의 몸은 지방질이 24%나 된다”며 “여자의 몸에 지방의 비율이 더 많다는 것은 유아적인 특질을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얼핏 보면, 남성우월론을 펼치는 듯하다. 그러나 더 읽어보면 정반대다.
여성은 육체적으로 어린이와 같은 특성을 보존하지만 “점점 더 감각적이고 주변 사람을 챙겨주는 기질을 갖추게 되었다”며 여성이 남성보다 정신적으로 더 성숙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오랜 세월 진화하는 동안 남자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신체적으로는 어린아이의 특징을 점차 벗어던지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성의 몸이 지닌 성적 매력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특히 어깨가 진화하면서 남성을 향해 관능적 신호를 보내왔다고 강조한다.
“노출된 여자의 어깨가 그리는 부드러운 곡선의 끝자락은 거의 반구형(半球形)이다. 이걸 두고 어느 작가는 ‘두 개의 구(球)여, 두 어깨에 하나씩 놓여 있는 관능의 진주여’라고 읊었다.”
특히 젊은 여자가 앉은 자세에서 두 무릎을 세워 가슴에 바짝 끌어안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면, 여성의 어깨가 가슴과 엉덩이 못지않은 성적 기호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여성의 사회 활동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어깨를 당당하게 넓히는 의상이 유행했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 전쟁 기간 중과 1970~80년대의 여권 신장 운동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성공한 여성일수록 늙을 때까지 어깨가 구부러지지 않는다는 것.
이 밖에 이 책은 여성의 신체 중에서 ‘가장 관능적이지 않은 부위’라고 불린 팔을 비롯해서 목, 코, 입술, 허리, 다리 등을 거쳐 가장 은밀한 곳까지 탐사하면서 여성의 몸을 통해 여성의 생물학적 의미를 풀이할 뿐만 아니라 종족과 지역별로 역사·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의 허상도 해체한다. 


왜곡에도 정교해진 '여성의 신비'


여성의 몸은 오랜 과거부터 남성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소중하고 정교하게 가꿔져 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혹하게 핍박받고 무시당해왔다. 여성의 몸이 치장되어 온 역사는 무려 4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에 자리한 고분에선 여왕이 사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매장된 많은 양의 화장품이 발견됐다. 이 고분에는 입술과 눈에 바르는 여러 가지 색깔의 염료가 들어있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도 여성의 머리카락, 얼굴, 가슴이나 허리를 아름답게 가꾸고 보호하는 화장술과 복장이 패션 전문가뿐 아니라 엔지니어에 의해서도 고안되고 있다. 최근 들어 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과 독립은 여성주의 저항운동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혹은 가부장적 규범에 의해 여성의 몸은 묶이고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었다. 천 년이 넘는 동안 중국의 여성들은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자기 발을 천으로 꽁꽁 감싼 채 살아야 했다. 여성의 가장 민감하고 섬세한 성기조차 할례라는 이름으로 절단되어졌다. 남성에게 순종하도록 만들기 위한 잔혹한 의식에 불과한 여성 할례는 지금도 아프리카·아시아·중동지역의 20여 개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 국가들에서 여성의 입술을 천으로 가리도록 하는 풍습도 숭고한 신앙심에 나온 것으로 포장됐지만, 실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가부장적 규범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은이 데스몬드 모리스는 런던 동물원의 포유류 담당자로 일했으며, <털 없는 원숭이>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동물학자다. 여성의 몸에 관한 탐구의 완결편이기도 한 이번 저술에서 그는 여성의 몸을 스물두 조각으로 나눠 기능적·사회적 의미 뿐 아니라 성적·생물학적 신비와 원리를 낱낱이 파헤쳐 본다. 그가 여성의 몸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여성의 몸은 수백만 년 동안 놀랄 만큼 정교하고 미묘하게 진화되어 왔으며, 가장 아름다운 유기체”지만 그동안 남성에 의해 왜곡되고 수탈당해 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여자’…여성 가슴의 진화


인간 여자’를 제외한 모든 영장류의 암컷은 가슴이 평평하다.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나 약간 부풀어 오를 뿐, 사람처럼 평소에도 봉긋한 반구(半球) 형태를 갖고 있는 가슴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자의 가슴을 해부해 보면 실제 모유 생산과 관련 있는 샘 조직 부위는 작다. 가슴이 작을수록 수유 자세도 편해진다. 가슴이 큰 엄마는 오히려 아기가 질식하지 않도록 가슴살을 눌러줘야 한다. 이런 점은 여자의 가슴 모양이 ‘양육 기능’과는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여자의 가슴은 이런 형태로 진화한 걸까?
저자는 “여자는 수많은 점에서 신체적으로 남자보다 한걸음 더 진화했으며 그 신체적 특징에는 성(性)과 출산이라는 측면에서 특수하게 진화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한다. 앞서 가슴의 예도 그렇다.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게 되면서 엉덩이가 보내던 성적 신호를 앞쪽에서는 볼 수 없게 되자 가슴이 엉덩이를 모방해 두개의 반구 모양으로 진화했다는 것.
이 책은 ‘털 없는 원숭이’로 잘 알려진 저자의 최신작이다. ‘털 없는 원숭이’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동물행동학과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여자의 몸을 바라봤다. 여자의 몸을 목, 어깨, 허리, 골반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22개 신체 부위의 특징과 진화 과정을 훑었다. 또 배꼽 피어싱, 눈 화장 등 신체를 꾸미는 의미도 분석했다. 여자 몸의 진화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여자의 몸은 어린아이의 신체적인 특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 원시 사회에서 사냥을 위한 ‘소모품’이었던 남자에 비해 출산을 담당했던 여자는 훨씬 중요한 존재여서 보호를 받아야 했으며, 여자의 몸이 아기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면 될수록 남자로부터 더 많은 보호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여자는 성대가 13mm로 남자(18mm)보다 짧고, 후두도 남자의 70%밖에 되지 않아 어린아이 목소리에 가까운 고음을 내는 것도 한 예다. 각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여성의 몸이 어떻게 강조되고 억눌려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귀는 피부가 구멍을 중심으로 늘어져 있는 모습 탓에 많은 문화권에서 여자의 성기를 상징했다. 힌두교에서는 태양신 수리야의 아들 카르나가 어머니 쿤티의 귀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 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다리 사이에 달린 귀’는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다.
이처럼 귀가 여자의 성기를 상징한 탓에 고대 이집트에서는 간통을 한 여자의 귀를 날카로운 칼로 잘랐고, 일부 문화권에서는 할례의 의미로 여자의 귀에 손상을 가하기도 했다. 


[책과 길] 왜 입술은 붉고 가슴은 솟았나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남녀 간 화법 차이를 말하는 비유만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남녀는 그 어떤 동물의 수컷과 암컷보다 더 많이,더 극적으로 다르다. 왜? ‘털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한국과 영국에서 동시출간된 신작 ‘벌거벗은 여자’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뇌 단층촬영 연구 결과를 보면 여자는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말을 잘한다. 후각,청각,촉각 등 오감 역시 남자보다 민감하다.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커서 오래 생존하고,25%(남성 12.5%)에 달하는 넉넉한 지방 덕에 배고픔에 잘 견딘다. 지방이 만들어낸 풍만한 몸은 유아적인 신체 특질을 보존함으로써 파트너인 남자에게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부수입까지 거둔다. 여자가 아이 양육을 위해 건강하고 영민하게 자신을 가꿔온 사이,남자는 키운 것은 고작 근육이다. 평균적인 현대 남자의 근육은 28㎏. 15㎏인 여자의 2배에 육박한다. 반면 기질적으로 남자가 소년적 특성을 버리지 못했다면,여성은 일찌감치 소녀적 감성을 버리고 어른이 됐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남자는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고 기질적으로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반면,여자는 나이를 먹어도 어린이의 신체 특징은 유지하면서 행동은 아이 기질을 벗어던졌다.”
동물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간이라는 종은 유아기 신체 특징을 가장 많이 보존한 동물이다. 그렇다면 아기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진 여성의 몸은 생물학적으로 더욱 발전된 형태인 셈. 누군들 여체에 관심이 없겠는가만,동물학자에게 여성은 그래서 호기심과 탐구의 대상이다. ‘벌거벗은 여자’는 진화의 최고봉이라는 인간 여성에 대한 동물학적 보고서다. 머리카락,등,허리,손,뺨 등 22곳 신체 부위를 하나씩 분석해나가며 저자는 여자들의 봉긋한 가슴과 도톰한 입술,풍만한 엉덩이가 왜,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 정착해왔는지 추적한다.
엉덩이편을 보자. 폄하와 비하의 대상인 엉덩이는 사실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키는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다. 볼록하게 발달한 둔부 근육 덕에 직립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직립 보행 후 큰 엉덩이는 이성에게 강한 성적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유리한 매체로 부각됐다. 유혹의 도구로 계속 커지던 여성의 엉덩이가 현재의 날렵한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은 얼굴을 맞댄 섹스가 시작된 뒤. 엉덩이 대신 가슴이 성적 유혹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여성의 입술은 침팬지 태아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의 영장류와 남성이 성장과 함께 입술이 안으로 말려들어 얇아지는 데 반해,여성은 성인이 된 뒤에도 뒤집힌 채 부드러운 입술을 유지한다. 기원전 4500년부터 시작됐다는 여성의 입술 화장은 붉게 부풀어오른 입술이 여성 성기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성적 제스처로 해석된다. 입술 속에 둥근 판을 넣어 늘어뜨리는 아프리카 수르마족과 안젤리나 졸리의 입술을 닮기 위해 파라핀을 주입하는 현대의 여성. 그들은 사실 이성의 유혹이라는 동일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